소화·담적

대장내시경 정상인데 배가 계속 아픈 이유가 뭔가요

변성범 원장
변성범 원장
한의학 박사 · 한방내과 전문의 · 변박사한의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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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시경 결과지를 손에 쥐고 “이상 없음”이라는 말을 들었는데,
배는 여전히 아픕니다.

이럴 때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“스트레스 때문”이라는 설명인데,
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뭔가 불충분하게 느껴지죠.

실제로 내시경이 볼 수 있는 것은 장 점막의 구조적 변화입니다.
그 구조가 멀쩡하다는 건, 통증의 출처가 점막이 아닌 다른 곳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.

그렇다면 그 ‘다른 곳’은 어디일까요.

변박사한의원 원장 변성범

내시경에 안 잡히는 통증은 신경계가 만들어내는 실제 신호입니다.

장은 감각 기관이기도 합니다

소장과 대장 안쪽에는 방대한 신경망이 깔려 있습니다.
이 신경망은 음식물의 이동, 가스의 압력, 장 벽의 긴장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
그 정보를 뇌로 보냅니다.

그런데 이 감각 신경이 지나치게 예민해진 상태가 있습니다.
의학에서는 이것을 ‘내장 과민성‘이라고 부릅니다.

내장 과민성이 생기면, 정상적인 자극도 통증 신호로 변환됩니다.
가스가 조금 차거나,
장이 약간 수축하거나,
식사 후 연동운동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도
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 거죠.

중요한 건, 이 상태는 내시경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.
점막에 염증도 없고, 용종도 없고, 구조적 이상도 없습니다.
내시경은 정상이지만 통증은 실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.

뇌와 장은 같은 회로 안에 있습니다

내장 과민성이 왜 생기는지를 이해하려면,
뇌와 장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.

뇌에서 장으로, 장에서 뇌로 신호가 오가는 이 경로를
‘뇌-장 축’이라고 부릅니다.
이 연결은 자율신경과 면역 신호, 그리고 호르몬을 통해 작동합니다.

뇌가 스트레스 상태에 들어가면 자율신경이 교란됩니다.
그 신호는 즉각적으로 장에 전달되어
장의 운동 속도가 바뀌고, 분비 기능이 달라지고,
장 신경계 자체가 더 예민한 상태로 세팅됩니다.

반대 방향도 작동합니다.
장이 반복적으로 불편한 신호를 뇌에 올려보내면,
뇌는 그 신호에 점점 과도하게 반응하도록 바뀝니다.
이것을 ‘중추 감작‘이라고 합니다.

중추 감작이 일어나면 통증의 역치가 낮아집니다.
즉, 더 약한 자극에도 더 강하게 반응하게 됩니다.
이 과정은 구조적 손상 없이 일어납니다.
그래서 내시경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는 겁니다.

왜 스트레스가 배 통증으로 이어지는가

여기서 많은 분들이 의아해합니다.
“제가 딱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지도 않은데요.”

그런데 뇌-장 축이 반응하는 스트레스는
우리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만이 아닙니다.

수면이 부족한 상태, 불규칙한 식사 리듬,
과거의 감염성 장염 이후 남은 신경계 흔적,
오래된 소화기 불편감이 반복되어 쌓인 패턴—
이런 것들 모두가 뇌-장 축을 지속적으로 건드립니다.

한 번 예민해진 내장 신경계는 자극이 없어도 잘 가라앉지 않습니다.
신경계가 ‘이 수준의 긴장이 기본값’이라고 학습해버리기 때문입니다.

그래서 스트레스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도
배는 계속 아플 수 있습니다.
이건 꾀병이 아닙니다.
신경계가 재조정된 상태에서 나오는 실제 통증입니다.

변박사한의원 원장 변성범

뇌와 장이 서로 주고받는 흐름 속에서 통증의 패턴이 자리 잡습니다.

구조가 아니라 패턴을 봐야 할 때

내시경이 정상이라는 결과는 매우 중요한 정보입니다.
위험한 구조적 문제를 배제했다는 뜻이니까요.

하지만 그 이후의 질문은 달라져야 합니다.
“어디가 망가졌는가”가 아니라,
“어떤 패턴이 이 통증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가”로요.

뇌-장 축의 흐름이 어느 지점에서 틀어져 있는지,
내장 신경계가 얼마나 예민해진 상태인지,
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시키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보는 접근이
이 상황에서는 훨씬 더 유효합니다.

구조를 들여다보는 검사가 할 일을 다 한 뒤에는,
흐름을 읽는 시각이 필요해집니다.

통증이 만들어지는 회로는
단단히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.
패턴은 생긴 것이고,
생긴 것은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.
그 여지를 어떤 방향에서 건드릴지가
앞으로의 핵심 질문이 됩니다.

자주 묻는 질문

Q. 대장내시경이 정상인데도 배가 아픈 게 실제 통증인가요?

A. 네, 실제 통증입니다. 내시경은 장 점막의 구조적 변화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, 내장 신경계의 과민 상태나 뇌-장 축의 이상은 포착되지 않습니다. 구조가 멀쩡해도 신경계가 예민해진 상태라면 통증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.

Q. 내장 과민성은 왜 생기나요?

A. 반복적인 장 자극, 과거 감염성 장염,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나 불규칙한 생활 리듬 등이 내장 신경계를 예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. 한 번 예민해진 신경계는 자극이 줄어들어도 쉽게 이전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.

Q.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 같은데 왜 배가 아픈 건가요?

A. 뇌-장 축에 영향을 주는 스트레스는 심리적 긴장감만이 아닙니다. 불규칙한 식사, 수면 부족, 반복된 소화 불편감이 쌓인 패턴 자체가 신경계를 지속적으로 자극합니다. 이 경우 주관적으로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아도 장 신경계는 이미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.

Q.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내장 과민성은 같은 건가요?

A.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진단명이고, 내장 과민성은 그 안에서 작동하는 핵심 기전 중 하나입니다. 내장 과민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과민성 대장증후군 진단을 받는 건 아니며, 반대로 진단을 받지 않았더라도 비슷한 기전이 작동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.

Q. 이 상태가 계속되면 장이 손상되나요?

A. 내장 과민성과 뇌-장 축 이상 자체가 장 점막을 직접 손상시키지는 않습니다. 다만 통증 패턴이 반복될수록 신경계가 그 상태를 기본값으로 학습하는 경향이 있어, 시간이 지날수록 개선이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습니다. 조기에 원인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.